강주은의 부부론💑
부부는 우리가 살면서 타인과 맺는 가장 결속력 강한 관계다. 이런 끈끈함과 유대감은 결혼했다고 바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깎고, 다듬고, 격정적으로 반목하다가도 끝내 마주 앉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상대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봐야만 그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깊은 고민과 인내, 크고 작은 변화와 시도 끝에 어쩌면 가장 관습적일 수 있는 사이를 인생의 가장 든든한 아군으로 만든 강주은에게 건강한 관계학에 대해 물었다.
강주은과 최민수는 작년에 결혼 30년 차를 맞이했다. 배우 최민수는 1993년 <주부생활> 인터뷰를 통해 당시 ‘베일에 싸인 피앙세’ 강주은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한 바 있다. 그만큼 두 사람은 시작부터 전 국민의 시선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캐나다에서 비밀스러운 약혼식을 치른 뒤 정식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입국 현장부터 실시간으로 공개됐고,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기자회견까지 열어 결혼을 공식화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6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강주은은 “우리는 살아온 문화, 가족에 대한 생각, 부부에 대한 관념 자체가 아예 다른 사람들이었다”고 말한다. 30년이 지난 지금 둘은 기꺼이 서로를 ‘나의 반쪽’이라 부른다. 완전히 다른 우주에 살던 두 사람이 서로가 없으면 존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관계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서로 맞춰가며 성장하는 부부’의 완벽한 서사를 보여준다.

너무너무 즐겁고 행복했어요. 막상 찍을 때는 제 모습이 어떤지 잘 모르거든요. 이런 일을 할 때 저는 철저히 영역을 지켜서 전문가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제 의견은 거의 내지 않아요. 제가 잘 모르는 분야니까요. 일상의 어떤 영역에서는 당연히 저만의 철학이 있고, 그걸 지켜나가거나 필요하면 주장을 하죠. 하지만 잡지, 유튜브 같은 것은 제가 잘 모르는 분야이고, 저보다 훨씬 잘 만드는 분들의 도움과 조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찍으면서도 ‘이런 옷이 나한테 어울린다고?’ ‘이런 포즈로 찍는 게 멋있다고?’ 속으로 생각했는데, 결과물을 보고는 와우! 남편도 보더니 정말 근사하다고, 찍기를 잘 했다고 저보다 더 마음에 들어 하더라고요.(웃음)
평소 일이나 작업물에 대해 남편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인가요?
좀 아니다 싶거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얘기를 하는 편이긴 한데, 대체로 제가 하는 것을 많이 지지하고 응원해줘요. ‘주은이가 원한다면’이라는 말을 자주 하죠. 그 자유로움이 무관심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제가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릴 때 가끔 이 사진은 어때, 저 사진은 어때 물어보거든요. 그럼 남편이 이건 좋아, 저건 좋아 대답해줘요. 그냥 그 사람의 관점이 궁금한 거예요. 같은 사진을 나는 이렇게 바라보는데 저 사람은 다르게 바라보는구나, 생각하는 거죠. 만약 서로 의견이 갈릴 때는 그걸 갈등 혹은 나를 향한 평가, 비난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관점의 차이’라고 보면 대화하기가 훨씬 편한 것 같아요. 그 기준으로 상대를 대하면, 나를 찌르는 것 같은 말이 어느 순간 다른 느낌으로 들려요.
두 분은 원래 그렇게 대화를 나누었나요? 그런 노하우는 어떻게 갖게 되었나요?
노노, 그렇지 않아요.(웃음) 남편이 저를 만나고 세 시간 만에 청혼을 했어요. 그 강렬한 눈빛으로 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확신에 차 얘기를 하는데, 어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제가 그 사람이랑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있더라고요! 그게 딱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에요. 그전에 저는 쭉 캐나다에서 살아왔고, 남편은 한국에서 톱스타로 살아왔어요.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 차이에다 유명인의 아내로 산다는 게 뭔지도 전혀 몰랐죠. 아는 게 없으니까 상상조차도 안 되는 거예요. 심지어 어떤 때는 남편을 보면서도 ‘이 사람 도대체 뭐지?’ 싶을 때가 많았어요.(웃음) 그동안 살면서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런 유형의 사람인 데다 제가 한국말까지 서툴렀으니, 뭐가 뭔지 하나도 몰랐던 거예요. 당연히 대화가 될 리가 없죠. 그때에는 모든 사람이 저를 주시하는 것 같았고 남편의 말, 말투, 사소한 반응 하나까지 다 조심스러웠어요. 유명인의 아내로서 누를 끼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한국 사회에서 바라는 현모양처의 모습을 기계적으로 학습하고 거기에 최대한 부합하는 삶을 살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어요.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유명인의 가족으로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죠. 워낙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고, 그때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컸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선택한 결혼이니 부모님께 힘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고, 만난 지 세 시간 만에 청혼할 만큼 저에 대한 끌림과 확신을 보여준 남편을 실망시키고 싶지도 않았고요. 지금처럼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대화하기 시작한 건 그 뒤로 한참 지나서였어요.
지금처럼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맺는 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저희의 경우에는 그 계기가 불현듯, 한순간에 온 것 같아요. 제가 결혼 후 10년 정도 주부로서 가정에만 충실하다가 외국인 학교의 대외협력이사로 일하게 됐어요. 학부모로 봉사활동을 한 게 인연이 된 거예요. 그렇게 저 나름대로 조용히 5년 정도 경력을 쌓으면서 굉장히 많은 일을 하게 됐어요. 학교 설립에 기여하기도 하고, 엄마들 커뮤니티도 만들면서요. 그렇게 내 영역에서 나만의 커리어를 열심히 쌓아가고 있는데, 여전히 저는 사회에서 ‘배우 최민수의 아내’인 거예요. 딜레마가 오더라고요. 난 뭐지? 이렇게 열심히 활동해도 여전히 난 평생 최민수의 아내로만 남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이런 고민을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그 순간 남편이 다 내려놓더라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 주은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았겠냐고, 충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제 고민에 완벽히 공감하면서 수용해준 거죠. 남편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서 저도 놀랐어요.
예상과 달랐다면, 원래는 어떤 반응을 예상했나요?
늘 한결같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굴면 ‘너 갑자기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하면서 놀라잖아요. 더 격하게는 그 변화를 거부하면서 화내기도 하고. 그럴 정도로 저는 철저히 남편이 우선이었고, 늘 뒤에 있었죠. 그래서 처음 고민을 얘기할 때도 ‘잘못하면 여기서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각오로 말했거든요. 오히려 반기를 들길 내심 바랐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럼 쿨하게 헤어져야지! 하고.(웃음) 그런데 남편이 “지금껏 나를 위해 살아왔잖아. 당신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하더라고요.
그때의 최민수 씨 생각도 궁금하네요.
제가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을 100% 다 알 수는 없지만, 어쩌면 남편은 제 얘기를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그전에 철저히 남편 중심으로 살았던 건, 그 사람이 강압적으로 강요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제 책임감 때문이었거든요. 그때는 사회 분위기가 지금보다 더 보수적이어서 ‘아내는 이래야 해, 남편은 이래야 해’ 하는 인식이 훨씬 강했고, 그 사이에서 제 주장이나 생각을 말하기가 어려웠죠. 일단 한국말이 너무 어려웠고요.(웃음) 그러다 보니 참고, 생각하고 하는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아요. 언어가 서툴러도 남편과 좀 더 일찍 그런 대화를 시도했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후회하지는 않아요. 어쨌든 그 시간 동안에도 우리는 각자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만의 방식으로 관찰하고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요. 남편이 제가 무엇을 감수해왔고, 어떤 희생을 했는지 관심이 없고 몰랐다면 그런 대화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제 고민과 생각을 상대로부터 완전히 공감받고 이해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더라고요. 아, 남편은 언제든지 나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구나! 그런 깨달음이 저희 관계에 큰 분기점이 됐어요.
뻔한 결론이지만, 결국 건강한 관계의 시작은 소통이군요.
네, 맞아요. 소통이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 진솔해야 하고, 상대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경청하겠다는 자세도 필요해요. 이해가 안 된다고 바로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궁금해하기도 해야 해요. 상대의 진심을 알아가려는 서로의 노력이 깔려 있어야 진짜 소통이 가능한 것 같아요. 남편이 “주은이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할 때도, 사실 저는 조금 의심했어요.(웃음) 정말? 진짜 내 마음대로 다? 이런 마음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사회 활동을 핑계로 일부러 새벽까지 술 약속도 막 잡고, 제가 주도해서 모임도 만들고 정말 하고 싶은 걸 다 해봤죠. 뒤늦게 사춘기 앓는 사람처럼.(웃음) 가끔 제가 새벽 늦게 들어가면 남편이 불편한 표정으로 안 자고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왜 안 자고 있어?” 물으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긴 한데 화는 안 내더라고요. “걱정이 돼서 기다렸지” 하고 말아요. 사실 남편이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갑자기 하루아침에 아이들 밥을 본인이 챙겨야 하고, “오늘도 일정 있어?” 물어보면 제가 “응, 스케줄 있으니까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 하고 답하니 무척 힘들었겠죠.(웃음) 그렇게 1~2년 누구의 간섭도 없이 바쁘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바깥일과 가정일의 밸런스를 찾게 되더라고요.
밸런스를 찾은 뒤의 얘기도 궁금하네요. 두 분은 지금 어떤 관계인가요?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서로 아는 관계죠. 제가 생각하는 거나 말하는 건 사소한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궁금해하는 모습이 어느 날은 정말 사랑스러워 보여요. 가끔 본인이 좀 세게 말했다 싶을 때는 나중에 그 일에 대해 꼭 설명해요. “나도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당신이 해준 조언들을 좀 더 반영하면 훨씬 좋을 것 같아. 당신 얘기를 쉽게 넘긴 건 아니야. 더 할 얘기는 없어?”라고요. 상대의 반응이나 기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서로 노력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피곤해 보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대화를 쌓아가고 관계를 만들어가다 보면 그냥 어느 순간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노력을 함께 해주는 게 정말 고맙기도 하고요.
‘나의 반쪽’이라는 말이 피상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이해하는 사이가 된 거네요.
맞아요.(웃음) 아무리 부부라도 서로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부부’라는 호칭은 사실 껍데기일 뿐인 것 같아요. 오히려 그 껍데기에 속아서 ‘남들은 몰라도 너는 날 잘 알겠지’ 하고 대충 대하기도 하죠. 그럼 남한테 받는 무관심보다 상처나 서운함이 훨씬 커요. 상대적으로 기대가 크니까요. 우리도 이제 30년을 살았고, 앞으로 수십 년을 또 함께 살아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우리 관계가 완벽하냐고 물으면 완전히 100% 확신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 경험을 얘기하자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는 부부 관계를 위해서는 분명히 인내도, 희생도 필요해요. 합리적 관계? 그런 건 사업 파트너에게 필요한 덕목이죠. 부부만의 대화법, 소통법, 존중하는 법, 그렇게 둘만의 건강한 규칙을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진솔해야 하고, 상대의 얘기를 있는 그대로 경청하겠다는 자세도 필요해요.
이해가 안 된다고 바로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궁금해하기도 해야 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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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은향
Photographer 김선혜
Styling 이진혁
Hair & Make-up 정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