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 폴서울의 한국 생존기


캐나다 회계사에서 한국 코미디언으로. 

낯선 땅, 낯선 언어 속에서 유머를 전파하는 폴서울이 한국에서 웃음을 만들며 배운 것, 

그리고 여전히 고민하는 것들에 대하여.


폴서울의 본명은 폴 알렉산드르 푸니에다. 원래는 캐나다에서 안정적인 회계사로 살아가던 그가 어느 날 짐을 싸서 한국으로 왔다. 이유는 하나였다. ‘이대로 살면 후회하겠다.’ 한국어도 못하고 코미디도 처음이었지만 웃음으로 한국 사회에 스며들었다. ‘외국인 훈련 센터’ ‘세종대왕 시리즈’ 같은 쇼트폼 콘텐츠로 SNS에서 주목받으며 ‘한국에 사는 외국인’의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는 폴서울. 그가 한국에서 코미디언으로서 꿈꾸는 다음 챕터를 들어봤다.

캐나다에 살면서 회계사라는 안정된 미래를 뒤로하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캐나다에서 회계사로 일할 때는 집 사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사는 삶이 예정돼 있었어요. 근데 ‘이대로 살면 분명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너무 많았고요. 사실 20년 전 한국에서 잠깐 살아본 경험도 있었고요. 그래서 다시 한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모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한국 사회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였을 텐데, 그중 코미디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처음엔 회계사로 일해보려 했는데, 한국어가 많이 서툴렀어요. 결국 영어 선생님을 하게 됐죠. 그러다 시작한 유튜브 채널을 계기로 ‘케이크’라는 영어 학습 앱에서 연락을 해왔어요. 그때 처음으로 웃긴 콘텐츠로 돈을 벌었고, 코미디로도 살아남을 수 있구나 싶었죠.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는 시선에서 한국 문화를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어요. 사실 유머나 코미디는 그 나라만의 정서를 잘 알아야 가능하잖아요. 한국식 유머나 문화를 익히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한국식 유머의 뉘앙스를 이해하려고 많은 것을 시도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한국에 사는 외국인’ 입장에서 느끼는 문화 차이를 풍자하게 됐죠. 대표적으로 ‘외국인 훈련 센터’라는 영상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꼭 익혀야 하는 한국식 뉘앙스를 훈련받는다는 설정이에요. 예를 들면 ‘밥 한번 먹자’가 진짜 밥 약속이 아니라는 걸 가르치는 거죠. 그런 애매한 한국식 표현들을 유머로 풀어낸 콘텐츠예요. 결국 한국에서 코미디로 성공하려면 한국 문화와 언어, 뉘앙스, 사람들의 생각을 계속 관찰하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세종대왕 시리즈’ 같은 영상은 사실 외국인이 한국 문화, 특히 김치처럼 민감한 소재를 건드렸음에도 큰 사랑을 받았어요. 

‘세종대왕 시리즈’는 김치를 싫다고 버린 외국인이 세종대왕에게 ‘맴매’로 벌을 받는다는 내용이에요. 그 영상의 반응이 좋았던 건 진짜 행운이에요. 근데 그 이유는 제가 스토리 안에서 일부러 ‘나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죠. 저는 실수한 외국인이고, 그런 저를 세종대왕이 훈육하는 식으로 풀었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보기엔 오히려 한국 문화를 배우는 모습처럼 보여서 불편함 없이 웃음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건 제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해요. 내가 부족한 역할을 맡고, 그 안에서 한국 문화를 배우는 포지션으로  가야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외국인 훈련 센터’ 같은 콘텐츠도 그런 구조로 만들었어요. 


한국 예능은 트렌드 변화가 빠른 편이에요. 요즘 가장 즐겨 보는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의 ‘오피스’ 같은 패러디 예능을 좋아하고, 성시경 님의 ‘먹을 텐데’도 자주 봐요. 신동엽 님의 술자리 예능도 좋아하고요. 근데 아직 한국어가 어려워서 밈 같은 건 모를 때가 많아요. 그래서 아는 콘텐츠만 봐요. 2년 뒤에는 더 많이 즐길 수 있겠죠.  


이미 한국 생활이 익숙할 것 같은데,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다시 배우려는 이유가 있나요? 

한국에 오래 살았지만 어휘가 너무 약해요. 한국에서 코미디를 제대로 하고 싶으면 더 깊게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어 책도 억지로 읽고 있어요. 제일 좋아하는 주제인 새 관련된 책을 찾아서 보고 있고요.


쇼트폼 영상으로 시작했는데, 앞으로 다른 채널이나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 있나요? 

할 수 있으면 좋겠죠. 솔직히 오프라인 쇼 같은 것도 해보고 싶지만, 아마 몇 년 후의 이야기 같아요. 지금은 제가 좀 애매한 포지션이에요. 아직 한국에서 코미디를 하는 외국인이 거의 없거든요. PD들도 저를 보면 ‘웃긴데 어떻게 써야 하지?’ 같은 고민이 드는 것 같아요. 외국인이 나오는 포맷은 대부분 ‘김치 먹고, 삼겹살 먹고 대박!’ 같은 것이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걸 넘어서는 코미디를 하고 싶거든요. 일단은 지금 자리에서 천천히, 기회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확장해보려고 해요.  


한국 코미디를 외국인의 시선으로 볼 때 특별히 흥미롭거나 독특하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예전 한국 코미디는 좀 독특했어요. 특히 <개그콘서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뚱뚱하거나 못생긴 남자들이 과장된 표정이나 행동으로 웃기고, 여자들도 일부러 못생긴 역할을 하면서 오버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외국인 입장에서는 좀 낯설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요즘은 유튜브에서 전형적인 코미디 스타일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좋아요.


한국 관객에게 통하지 않는 ‘서양식 유머’가 있나요? 

야한 유머요. 만약 제가 20대 섹시한 외국 남자였다면 모르겠지만, 저는 결혼을 하고 딸도 있는 아저씨니까 그런 농담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 그래서 시도조차 안 해요. 정치 유머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에서는 한번 정치 유머를 하면 평생  그 이미지가 따라붙어요. 오히려 정치색 없는 유머가 더 오래간다고 생각해요. 10년 뒤에 봐도 여전히 웃길 수 있는 그런 코미디를 하고 싶어요. 


코미디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자신만의 무기는 무엇인가요? 어떤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한 코미디언이 자신의 대머리를 소재로 삼은 것처럼, 저는 ‘외국인’이라는 게 무기예요. 저는 늦게 한국에 왔고, 군대나 깡패 영화 같은 것도 잘 모르거든요. 그런 걸로 억지로 농담하려고 하면 가짜 같고 어색해져요. 근데 외국인으로서 겪는 경험은 진짜라서 더 웃길 수 있죠. 웃음은 결국 내가 진짜 아는 것, 실제로 겪은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외국인이라는 현실을 솔직하게 이용하고 있어요.


한국에서 살면서 ‘이제 나도 조금은 한국인이 됐다’고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제일 먼저 느낀 건 ‘눈치’가 늘었다는 거예요. 원래는 눈치가 전혀 없었거든요. 또 캐나다에서는 선물을 거절해도 아무렇지 않은데, 한국에서는 선물을 준 사람이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그냥 “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요. 음식 문화도 달라요. 캐나다에서는 보통 식사할 때 각자 자기 접시에 먹고, 음식도 잘 안 나눠 먹어요. 근데 이제 된장찌개에 숟가락 넣어서 떠먹는 게 자연스러워졌어요. 이런 거 보면 나도 점점 한국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코미디언으로 살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고민 혹은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요?   

‘이거 나만 웃긴 건 아닐까?’ 이 생각을 제일 자주 해요. 제가 정말 재밌다고 생각하며 올린 영상도 막상 반응이 없을 때가 많거든요. 그래도 결국 방법은 없어요. 늘 불안하지만 그래도 ‘몰라,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해요.


지금의 한국은 폴서울에게 어떤 의미, 어떤 공간으로 남아 있나요? 

저한테 한국은 따뜻하고 정이 많은 나라예요. 외국인인 저를 늘 친절하게 대해주고 실수해도 웃으며 받아줘요. 20년 전에 처음 한국 왔을 땐 이렇게까지 따뜻한 나라인 줄 몰랐어요. 예전엔 외국인이라고 하면 무조건 영어 선생님 해야 하고, 한국어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였잖아요. 근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받아주니까, 그 변화가 정말 특별하게 느껴져요. 이건 ‘국뽕’ 때문에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웃음)  


웃음은 결국 내가 진짜 아는 것, 실제로 겪은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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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