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 of Origins

 


요리는 한 사람이 살아온 궤적이자 배경이기도 하다. 전 세계는 저마다의 노스탤지어로 새로운 요리를 만들고 있다.




요리의 큰 축을 만들어준 할머니들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태어나 케냐 난민 캠프를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셰프 하와 하산(Hawa Hassan).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는 항상 동아프리카 할머니들 ‘비비스(Bibis)’가 만들어준 음식이 있다. 그는 2020년 출간한 요리책 «In Bibi’s Kitchen»을 통해 에리트레아부터 모잠비크까지 8개국 할머니들의 레시피를 소개했고, 책은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를 수상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할머니의 음식이 곧 나의 문화적 정체성”이라 말하는 그는 지금까지도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기획하며 자신의 요리 철학이 된 음식을 알리는 데 집중한다.

@hawahassan

www.basbaasfoods.com

©In Bibi’s Kitchen / Ten Speed Press


 

삶을 짓는 손

고등학생 시절 무료 급식을 먹기 위해 감자를 까고 설거지를 했던 영국 셰프 멀린 래브런 존슨(Merlin Labron Johnson)에게 요리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스스로의 손으로 삶을 영위하는 법을 일러준 행위다. 이후 벨기에 시골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인 드 불프(In de Wulf)에서 땅과 식재료, 요리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몸소 배우며 오십(Osip)을 오픈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 오십은 ‘자연이 메뉴를 결정한다(Nature writes our menu)’는 철학 아래 매일 밭에서 수확한 재료로 메뉴를 짜는 팜투테이블 레스토랑이다. 지난해에는 숙박과 농장 투어를 결합한 새로운 식문화 공간인 오십 2.0으로 발돋움했다.

www.osiprestaurant.com

©Dave Watts


 

요리로 다진 정체성

누군가에게 요리는 정체성이 될 수 있을까?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나 스웨덴에서 성장한 셰프 마커스 사무엘슨(Marcus Samuelsson)에게는 분명 그렇다. 그는 자신을 ‘스웨디오피언(Swediopian)’이라 부르며, 에티오피아와 스웨덴 그리고 셰프로서 활동을 시작한 미국 뉴욕의 기억을 하나로 잇는 요리를 지향해왔다. 최근에는 고향 아디스아바바에 자신의 이름을 건 레스토랑을 열고 전통 식재료인 테프(Teff)와 향신료 베르베레(Berbere)를 활용해 현대적인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미식에도 관심이 깊은 그는 현지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으로 볼보 트럭과 협업해 식재료를 운송하고 만찬을 완성하는 캠페인에 참여했다. 식재료의 맛뿐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과 희로애락까지 식탁 위에 올리는 일이 그의 요리의 핵심이다.

www.marcusaddis.com

©Volvo Trucks


 

저마다의 스토리텔링이 담긴 디시

다양한 식문화와 재료, 셰프가 만나고 융합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한 국제 요리 컨퍼런스 월즈 오브 플레이버(Worlds of Flavor)는 셰프 개개인의 정체성, 스토리를 레시피로 풀어내며 교류하는 장이다. 2022년부터는 «InBibi’sKitchen» 저자 하와 하산이 행사의 공동 창립자 겸 발표자로 참여해 이러한 취지를 강화하고 있다. 그는 “레시피는 단순한 조리법이 아니다.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정체성과 기억을 전하는 매체”라고 말하며, 전통 스토리텔링을 통해 음식의 문화적 맥락을 이어가는 것을 행사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

www.worldsofflavor.com

©CIA / Worlds of Flavor


 

서아프리카 요리를 런던에서 만나는 법

영국 런던 피츠로비아의 서아프리카 레스토랑 치슈루(Chishuru)를 운영하는 나이지리아 출신 셰프 아데조케 바카레(Adejok Bakare)는 2024년 영국 최초의 흑인 여성 미슐랭 스타 셰프로 등극했다. 그는 쌀 팬케이크 시나시르(Sinasir)나 옥수수 케이크 에코키(Ekoki), 레몬·양파 마리네이드 기법인 야사(Yassa)를 적용한 구이 등 서아프리카의 대표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 특히 향신료와 발효, 불맛의 조화를 통해 낯선 서아프리카 음식의 매력과 다양성을 런던의 테이블 위에 새롭게 펼쳐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www.chishuru.com

©Chishuru


 

오악사카의 현대적인 맛

멕시코 남부의 오악사카(Oaxaca)는 전통 멕시코 요리의 원형이 남아 있는 곳이다. 칠리, 코코아의 기원지이자 몰레(Mole) 소스의 탄생지이기 때문. 셰프 알레한드로 루이즈(Alejandro Ruiz)에게도 오악사카는 특별한 지역인데, 어린 시절 가족들과 농장에서 토마토와 칠리를 수확하던 추억이 그의 요리 원동력이다. 오는 8월 포시즌스 호텔 휴스턴에서 열리는 프롬 오악사카 위드 러브(From Oaxaca, With Love) 행사는 그 기억을 식탁에 재현한다. 토마토와 칠리를 우려낸 토틸라 수프, 몰레 소스를 곁들인 비프 요리 등 지역의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할 예정이라고.

www.fourseasons.com

©Four Seasons Hotel Houston


 

상공에서 펼쳐지는 뉴질랜드 식탁

남태평양의 작지만 아름다운 섬 사모아에서 태어난 뉴질랜드 출신의 셰프 모니카 갈레티(Monica Galetti).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나누던 양고기 로스트와 계절 과일 디저트의 기억이 요리의 뿌리가 됐다. BBC <마스터 셰프>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인 그는 2024년부터 싱가포르항공과 손잡고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 전용 기내식을 선보이고 있다. 양고기 커틀릿, 아몬드 수프, 트리클 타르트, 딸기 프레지에 등 남태평양과 뉴질랜드 식탁에서 영감을 받은 메뉴를 통해 “3만5000피트 상공에서도 따뜻한 가족 식사의 감각을 ©Four Seasons Hotel Houston 전달하고 싶다”는 신념을 전하기도.

@monicagaletti1

©Singapore Airlines


 

하늘에서 맛보는 모던 광둥 요리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중국계 미국인 셰프 브랜던 주(Brandon Jew)에게 인생 음식은 어린 시절 할머니와 차이나타운 내 시장을 돌며 먹던 쌀죽 콘지(Congee)다. 할머니 곁에서 곁눈질로 배운 식재료 고르는 감각은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수상 셰프가 된 지금까지도 여전하다. 그는 제철 식재료에 광둥 레시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요리를 선보인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알레스카항공과 협업해 퍼스트 클래스 전용 기내식을 만들었는데, 현미로 끓인 콘지와 간장에 절인 오리고기, 참깨누들 등 모던 광둥 요리를 선보이며 ‘집밥이 곧 요리 철학’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증명해냈다.

@brandoj

©Alaska Airlines


 

아시아 터치를 가미한 테이블

1876년 개관한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르네상스 고전 예술품부터 마르셀 뒤샹 등 근현대 미술까지 방대한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 미술관 내 레스토랑 스티어(Stir)의 총괄셰프로는 한국계 미국인 훈 리가 영입됐다. 북유럽과 동아시아를 결합한 독창적인 미식 세계를 구축해온 그는 취임 후 전시와 연계한 특별 메뉴와 이벤트를 꾸준히 기획해왔다. 지난해에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코스 요리를 선보이며 지역 학생들과 함께 한국 도예사를 배우고 레스토랑에서 사용할 80여 개의 그릇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계속해 옥수수, 튀밥 등 아시아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며 스티어만의 새로운 다이닝 경험을 만들어가고 있다.

www.philamuseum.org/visit/dining

©Philadelphia Museum of 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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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유승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