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마주친 멕시코 요리

진우범 셰프에게 음식은 하나의 문화다. 그는 단순히 현지의 맛을 전하는 것을 넘어 멕시코 음식에 담긴 전통과 문화를 해석하고, 이를 한국의 지역성과 현대성에 연결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가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과 스트리트 타코 가게를 동시에 운영하는 이유다.
신당중앙시장 라까예 진우범 셰프
올해 미슐랭 1스타를 받은 멕시칸 파인다이닝 ‘에스콘디도’를 비롯해 성수동의 비스트로 ‘엘 몰리노’, 신당중앙시장의 스트리트 타코 가게 ‘라까예’, 경동시장 인근의 선술집 ‘페스카데리아’는 모두 진우범 셰프가 이끄는 곳들이다. 그는 멕시칸 퀴진 전문 F&B 기업인 몰리노 프로젝트를 통해 각기 다른 콘셉트의 멕시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이기도 한 몰리노(Molino)는 멕시코의 주식인 토르티야를 만드는 제분소를 의미한다. 전통 방법으로 멕시코의 토르티야를 만드는 공장을 세우겠다는 목표로 몰리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진우범 셰프를 토르티야를 구워내는 곳이자 신당중앙시장의 스트리트 타코 가게인 라까예에서 만났다.
라까예에서 맛볼 수 있는 멕시코 음료 ‘하마이카’시장에 가게를 운영하는 셰프는 보기 드문 것 같아요. 라까예는 어떻게 열게 되었나요?
멕시코 음식을 하나의 스타일로만 정의할 수는 없기에 다양한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트라트 타코라는 음식과 어울리는 공간을 찾다 보니 시장에 라까예를 열게 되었고요. 멕시코에서 타코는 남녀노소 누구나 어디서든 간편히 즐기는 음식이거든요.
라까예의 메뉴를 구성할 때 고민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타코 자체가 길거리 음식이기에 특별히 바꿀 것이 없었어요. 다만 가격대를 낮춰야 하니 가능한 선에서 최고의 맛을 뽑아내기 위한 방법을 많이 고민했어요. 토르티야 같은 재료를 직접 만들면서 맛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저희만의 방식을 찾아내는 식이었죠.
직접 만든 토르티야를 사용한 스트리트 타코
라까예는 토르티야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어 재미있어요. 토르티야 공장을 세우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다는 몰리노 프로젝트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맞아요. 몰리노 프로젝트는 토르티야를 만드는 방앗간을 뜻하는 몰리노에서 따왔어요. 멕시코인들의 주식이자 멕시코 음식의 핵심인 토르티야를 만드는 공장을 세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죠. 국내에서는 여전히 시판 토르티야를 사용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라까예의 요리를 맛본 이들은 원물로 제대로 만든 토르티야의 중요성을 점차 알아가리라 생각해요. 라까예에서는 매일 옥수수를 갈아서 토르티야를 만들어요. 여기서 만든 토르티야를 성수동의 엘 몰리노의 요리에도 사용하고요.
여러 시장 중에서도 신당중앙시장에 자리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멕시코에서 스트리트 타코를 맛볼 만한 공간은 어디일까 생각하던 중 시장을 방문했고, 마침 자리가 나서 문을 열게 되었어요. 처음부터 신당중앙시장을 고집한 건 아니지만 지내다 보니 점점 더 마음에 들어요. 서울의 4대 시장답게 새로운 가게와 사람들이 계속 유입되고 변화하는 곳이거든요. 그리고 공간이 다른 시장에 비해 쾌적해요.
라까예를 운영하는 진우범 셰프와 하나유통의 조광선 대표처음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텃세도 겪었다고 하는데 라까예 주변의 가게 사장님들은 전혀 그러지 않고, 오히려 저희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느낌이에요. 따뜻한 분위기죠.
가깝게 지내시는 이웃 가게도 있나요?
바로 옆집인 ‘하나유통’이요. 양파, 고수, 설탕, 콜라, 포크 등 가게에 필요한 여러 재료를 하나유통에서 구입하고 있어요. 가까워서도 좋지만, 실제로 제일 잘해주시기도 해요. 3년 전 라까예를 처음 열었을 때 저희 가게 앞까지 청소해주고 계셨던 것을 한참 뒤에 알았어요. 또 한 번은 행사에서 사용하고 남은 아보카도가 너무 많아 적재할 공간이 부족했는데, 큰 냉장고가 있는 주변 상인분들이 도움을 줘서 보관할 수 있었죠.
다양한 스트리트 타코를 맛볼 수 있는 라까예 전경라까예에 이어 경동시장 인근에 페스카데리아를 열었어요. 두 가게는 어떻게 다른가요?
페스카데리아는 해산물을 주로 활용한 멕시코 요리를 선보이는 곳이에요. 안주처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요리이다 보니 라까예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시장에 자리하게 되었고요. 주류는 메즈칼이나 테킬라 외에도 소주, 사케, 맥주 같은 익숙한 것들을 함께 두었어요.
경동시장은 어떤가요?
신당중앙시장과 분위기가 다르긴 하죠. 페스카데리아가 자리한 곳이 시장 안쪽은 아니고 인근이라 상인분들과 잘 알고 지내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경동시장이라는 공간은 한국에서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재미있는 재료도 많고요.
하나유통에서 판매하는 재료들시장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누구든 시장을 한 번에 바꾸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건축적으로나 도시개발적인 관점에서 훌륭한 곳들은 한 번의 기획으로 만들어지지 않아요. 긴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진 곳이죠. 전쟁 등의 이유로 서울에 그런 곳이 많지 않아 아쉬운데, 시장이야말로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고 새로운 것이 유입될 때마다 조금씩 변화하는 유기적인 멋이 있는 곳이잖아요. 그런 시장의 매력을 한 번의 개발로 지우려고 하지 않았으면 해요.
신당중앙시장 하나유통 조광선 & 안병순 대표
라까예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하나유통’을 소개했어요. 하나유통은 어떤 가게인가요?
시장에 있는 가게 50여 곳에 물건을 납품하고 있어요. 설탕이나 식용유 같은 공산품부터 채소까지 다양하게 취급하고 있어요. 가게마다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 주는 일을 하죠.
하나유통에는 고양이 다섯 마리가 함께 지낸다문을 연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30년 가까이 되었어요. 1997년 IMF 시기에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접고, 시장으로 와서 다시 일을 시작했으니까요.
긴 세월 동안 가게를 운영해온 비결이 궁금해요.
우리 같은 재료상들은 시장에 오래 남아 있어요. 식당 같은 가게는 경기를 많이 타거든요. 그런데 재료상은 직원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경기가 어려울 때도 둘이서 일하면서 버틸 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일해온 세월만큼 어려운 시간도 있었을 것 같아요.
할 수 없이 버텨왔죠. 올해 조금 힘들면 내년에 조금 나아질까 하며 버텨오다 보니 지금이 된 것뿐이에요. 시장 상인들은 모두 대단해요. 왜냐하면 경기를 제일 먼저 타는 곳이 시장이거든요. 또 이 시장은 소매로 구입할 거리가 많은 곳이 아니다 보니까 손님을 모으기가 더 어렵기도 하고요.
바로 옆에 이웃한 라까예와 하나유통요즘 많은 젊은이가 시장에 가게를 열잖아요. 라까예가 시장에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요.
아, 이런 가게도 있나 했어요. 처음 먹어본 음식이 신기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 다들 맛있다고 하고 자꾸 먹다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외국인 손님도 많이 보여요. 라까예처럼 손님이 많이 오는 가게가 있으면 우리 가게 물건을 사주는 손님이 아니라도 시장에 활력이 생겨서 좋아요. 시장은 분위기도 중요하니까요.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잘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열심히 해야겠구나 하는 마음도 다시 생기고요.
단골 가게는 어디인가요?
다 친해요. 한 동네에서 특별히 좋아하고 그런 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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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주혜
Photographer 박나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