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모두를 위한 병원



노동자를 위한 의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품은 뒤 오직 한길을 걸어온 임상혁 원장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병원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 진심에 공감한 수많은 시민이 마음을 보태며 목표 기부금 50억 원을 달성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일하다 아프면 치료받고, 회복 후 다시 일터로 복귀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 같지만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이전보다 더 나쁜 조건의 일자리로 복귀하거나 아예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녹색병원의 3대 원장으로 재직하며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 해결에 누구보다 힘써온 임상혁 원장은 전태일의료센터를 건립하며 그 가치를 더 큰 연대로 확장하려 한다.


처음 의대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나요?

수학을 잘해서 자연스레 이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그런데 막상 이과 안에서 정말 하고 싶은 전공이 없더라고요. 대신 사람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렇다면 이과에서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일을 할 수 있는 전공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의대에 진학해야겠다 결심했죠. 환자들과 소통하는 일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의대를 다니던 시절 원진레이온 공장 노동자들을 마주한 일이 삶의 행로를 바꾸었다고요.

학생운동이 굉장히 활발하던 시기에 대학을 다니다 보니 사회에 나가서 어떤 역할을 할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모두가 그런 질문을 품고 살던 시절이었죠. 그러던 중 의대 3학년이던 1988년, 원진레이온 중독 사건이 터졌어요. 의대생들이 뜻을 모아 선배 의사들과 함께 구리에 작은 진료소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원진 환자들을 만났어요. 직접 환자들 집을 방문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사했는데, 처음 만난 다섯 분 모두 휠체어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 계셨어요. 표정도 거의 없고 인지 기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죠. ‘이런 병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라 지금도 잊히지가 않아요. 사건은 1988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 병에 걸린 건 10년도 더 전이니 치료에 돈도 많이 들고,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깨진 가정도 많이 봤어요.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이 집회에 가면 피켓도 만들어주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사람들을 위한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더욱 굳어졌어요. 그 이후로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지금까지 온 게 벌써 30년이 다 됐네요. 



꿈을 이룬 셈이네요.

사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이라도 힘들면 옆길로 빠지기도 하잖아요. 30여 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어떻게 없었겠어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흔들림은 늘 아주 작은 순간이었고, 한 번도 이 길에서 벗어나지는 않았어요. 아픈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하는 의사가 되는 것.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렇게 한길을 걷는 여정 가운데 녹색병원 원장으로 재직하게 되었군요. 

가정의학 전문의를 딴 뒤 지식인, 인권변호사, 의료인이 뜻을 모아 세운 구로의원에서 일했어요. 급여는 일반 의사의 절반 이하였지만 구로공단뿐 아니라 전국에서 많은 노동자가 찾아오는 의미 있는 곳이었죠. 이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까지 취득했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녹색병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해온 일이 무척 많을 텐데, 그중에서도 특히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이 있다면요?

예전에는 마트나 편의점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서서 일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의자 놓기 캠페인을 했어요. 서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에게 의자를 놓아주자는 캠페인이었는데, 예상보다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여성단체와 인권위까지 참여해 전국 매장에 의자를 놓았죠. 사회는 함께할 때 바뀐다는 사실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달았어요. 최근에 한 일 중에는 ‘이어줄 캠페인’을 소개하고 싶네요. 녹색병원이 있는 중랑구에는 폐지를 줍는 어르신이 많아요. 어느 날 한 어르신이 폐지를 가득 싣고 가다 도로 턱에 걸려 폐지가 쏟아지고, 그 뒤에 차가 기다리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안전한 리어카를 만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폐지 수집용 끈 ‘이어줄’을 개발해 판매했고, 그 수익금으로 어깨와 허리 부담을 최소화한 리어카를 만들어 지원했죠. 병원 7층에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있어서 인간공학을 전공한 박사님과 여러 전문가들이 뜻을 모아 이런 일들을 꾸준히 해오고 있어요. 



녹색병원에서도 이미 노동자들을 위한 여러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전태일의료센터를 구상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그동안 노동자, 지역 주민, 인권, 환경을 중심으로 네 가지 축의 활동을 해왔는데, 지금의 병원 규모로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어요. 좀 더 크고 넓은 곳에서 노동자들의 건강을 중심으로 한 활동을 더욱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병원 주차장에 건물을 짓고 이름을 ‘전태일의료센터’로 하자고 제안했는데,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반대를 했어요. ‘전태일’ 하면 투쟁, 분신, 데모 같은 이미지가 연상돼 병원의 이름과는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전태일이 상징하는 것은 배려, 나눔, 연대라고 생각했어요. 약한 사람을 보면 마음 아파하고 기도하며, 차비를 털어 여공들에게 풀빵을 나눠준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하잖아요. 결국은 자기 몸을 불사른 그 마음은 노동자뿐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 전태일의료센터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죠. 2020년,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녹색병원은 전태일 병원이 되겠습니다”라고 선언을 했어요. 이름을 바꾼다기보다 전태일 정신을 이어가는 병원이 되겠다는 다짐이었죠.


모금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요?

개인 10만 원, 단체 100만 원 이상을 후원하면 전태일의료센터 벽돌에 이름을 새겨주는 ‘벽돌 기금’을 모금했어요. 목표는 50억. ‘설마 될까’ 싶었는데 현재 53억 정도 모였습니다. 후원자들에게 전태일의료센터가 완공되면 뭘 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었더니 ‘마음을 다친 사람을 치유해달라’는 요청이 가장 많더라고요. 완공하기까지는 시일이 걸리니 이 일부터 빨리 해보자 싶어 광화문에서 가까운 곳에 ‘전태일의료센터 마음상담소’를 먼저 오픈했어요.



일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다치는 일이 많잖아요. 전태일의료센터 홈페이지에는 “일하다 아프면 치료받고, 아프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개선해 예방하고, 회복 후 다시 일터로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고 쓰여 있어요. 너무 당연한 말인데, 현실은 어떤가요?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대학병원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병원이 치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저희가 하고자 하는 역할은 ‘예방’과 ‘재활’이에요. 예를 들어, 서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의자를 놓으면 하지정맥류를 예방할 수 있듯 일하는 환경들을 바꿔나가는 것이 ‘예방’이겠죠. 또 일하다 크게 다치면 결국 예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더 나쁜 조건의 일자리로 가거나 아예 일을 못하게 되죠. 그래서 그분들을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 원래 일하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돕는 것이 ‘재활’이에요. 이런 활동이 선한 영향력을 미쳐 더 많은 의료기관, 특히 공공 의료기관에서 이 역할을 함께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품고 있습니다.


전태일의료센터 벽돌 기금 참여자들처럼 최근 자기만의 방식으로 선한 변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어요. 그 변화를 체감하나요? 

그럼요. 놀랍게도 기부자의 80%가 여성이고, 70%가 20~30대예요. 젊은 세대가 굉장히 따뜻한 마음으로 기부를 실천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고 감동받고 있어요. 기부자들에게 코멘트를 하나씩 받는데, ‘첫 알바 월급으로 기부해요’ ‘아빠 생각나서 기부해요’ 같은 메시지를 보면 정말 가슴이 찡해요.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나요?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를 꿈꿔요.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요. 지금은 격차가 너무 커지고 있고, 그 괴리가 더 심해지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가진 사람이 조금 더 나누다 보면 우리가 말하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의료센터 건립에 동참한 분들도 결코 경제적으로 넉넉해서 기부한 게 아니에요. 각자의 소중한 정성들이 쌓여 큰 금액이 만들어졌죠. 이런 게 바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연대의 힘이라고 느꼈어요. 앞으로도 연대 문화를 계속 이어가고 싶어요. 제가 2019년에 원장이 되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한 것이 하나 있었어요. ‘우리 녹색병원에는 비정규직이 한 명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죠. 물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데는 재정 문제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차별’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하나씩 정규직화를 진행했어요. 2021년에는 요양보호사들을, 2022년에는 외주로 운영되던 조리 인력을 인소싱해 정규직으로 전환했어요. 그리고 2022년 12월 31일부로 청소하는 분들의 위탁 계약이 종료되면서, 역시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했죠. 2023년 1월 1일부로 녹색병원은 비정규직이 단 한 명도 없는 병원이 됐습니다. 우리가 1호라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2호는 아직도 안 나왔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인생 목표가 있나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원장으로 일한 지도 오래됐고 나이도 좀 들다 보니 이제 이곳을 내려놓고 시골로 가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도시보다 의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잖아요. 병원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진료도 하고, 지역의 농민들과 막걸리도 한 잔 마시면서 평온하게 남은 삶을 보내는 것이 저의 소박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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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Photographer 김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