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건네는 비움의 힘 


‘웰니스’ ‘리트리트’라는 개념이 생기기 전부터 사유원은 그 자리에 있었다.

국내 웰니스 여행의 원형이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공간이 지금 이 시대에 유독 더 빛나는 이유가 있다.



사유원 박준용 본부장

 

대구 군위군 팔공산 자락, 70만 제곱미터의 산지에 자리한 사유원(思惟園)은 평범한 수목원이 아니다. 계곡과 능선을 그대로 살린 지형 위로 수백 년 수령의 소나무, 배롱나무, 모과나무가 자리 잡고, 그 사이로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은 콘크리트 벽 사이로 스미는 빛과 함께 걷는 이를 사색으로 이끌고, 승효상의 현암은 주변 숲과 계곡 등 자연을 한 폭의 그림처럼 품고 있다. 이 외에도 300년이 넘은 모과나무 108그루가 장관을 이루는 ‘풍설기천년’까지 발길이 닿는 곳마다 건축과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풍경이 이어진다. 사유원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TC태창을 이끌었던 유재성 회장이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밀반출되려던 300년 된 모과나무를 발견하고 되사들인 것이 계기였다. 이후 전국의 노거수를 모으고 나무를 한 그루씩 심고 돌을 놓으며 정원을 만들었다. 그렇게 완성된 사유원은 2021년에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입장료가 평일 5만 원에 달하지만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찾아 재방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유원 홍보마케팅팀 박준용 본부장을 만나 사유원이 건네는 비움과 회복의 의미에 대해 들었다.




최근 수면, 디지털 디톡스, 명상 등에 초점을 맞춘 리트리트 여행이 각광받고 있는데, 사유원은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나요?

요즘은 AI나 디지털 기술이 워낙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정보와 자극에 노출되고 있죠. 그 과정에서 생각보다 더 깊은 피로를 느끼고요.이제 휴식은 쉬는 행위를 넘어 온전한 ‘회복’을 의미한다고 봐요. 최근 주목받는 다양한 웰니스 프로그램 역시 결국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고 삶의 균형을 찾고자 하는 욕구에서 출발하고요. 사유원은 이러한 흐름을 반짝했다 지나갈 트렌드가 아니라 현대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본질적인 변화로 바라보고 있어요.


사유원은 이런 흐름이 생기기 전부터 존재해왔는데, 어떤 철학에서 처음 출발하게 되었나요?

설립자인 유재성 회장은 오랜 기간 철강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나무, 돌 같은 자연에 깊은 애정을 품고 있었어요. 사유원은 단기간에 조성된 곳이 아니에요. 3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무를 한 그루 한 그루 심고, 돌을 하나씩 정성스레 놓으며 완성해온 공간이죠. 지금의 웰니스나 리트리트라는 개념이 대중화되기 훨씬 전부터 자연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다고 믿은 거죠. 즉, 사유원은 멋진 풍경만 감상하는 정원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이라는 철학에서 출발했어요.


요즘은 자극적인 콘텐츠와 디지털 기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요. 사유원에서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사색과 무념의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돕는 장치는 무엇인가요?

사유원은 공간에 대해 일부러 많은 설명을 보태지 않아요. 정답을 쥐여주기보다 각자의 답을 찾도록 돕는 공간이거든요. 숲길을 걷다 보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하늘과 나무를 향하고, 독창적인 건축물들은 걸음의 속도를 늦추도록 이끌어요. 곳곳에 마련된 전망 공간과 벤치는 발길을 잠시 멈추고 머무르게 만들고요. 사유원이 숨겨둔 가장 큰 장치는 역설적이게도 ‘여백’이에요. 방문객들은 그 넉넉한 여백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죠.


숲길 걷기, 필라테스, 선셋 투어를 아우르는 ‘사유원 여름 사색’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이 사유원 하면 봄가을을 떠올리는데, 사실 여름의 사유원이 가장 생동감 있거든요. 초록이 가장 짙어지는 계절인 만큼 대지의 생명력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우고요. 무더운 날씨에도 숲길로 들어서면 자연이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에 몸과 마음이 금세 차분해져요. 여름만의 매력을 더 많은 사람이 직접 경험하길 바라면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어요.


사유원은 정원이기도 하지만 건축물 자체도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알바로 시자의 소요헌, 승효상의 현암처럼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을 품고 있는데, 사유원에서 건축은 어떤 역할을 하나요?

사유원에서 건축은 자연을 대체하거나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오히려 자연을 더 깊이 경험하게 돕는 조력자에 가깝죠.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설계한 공간들이 단순히 아름다운 조형물에 그치지 않는 이유기도 해요. 늘 보던 익숙한 풍경도 특정한 건축적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면 전혀 다른 감동으로 다가오거든요. 사유원에서는 자연과 건축이 서로를 품으며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해요.


클래식 공연이나 간송미술관과의 협업처럼 자연과 예술을 엮는 콘텐츠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어요. 정원이라는 공간에 예술을 들이게 된 이유와 앞으로 계획 중인 프로그램도 알려주세요.

자연이 감성을 깨운다면, 예술은 그 감성의 깊이를 확장해줘요. 좋은 음악 한 곡, 울림을 주는 작품 한 점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내면의 감각을 깨우곤 하거든요.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 그리고 예술이 어우러질 때 가장 깊은 사색이 가능하다고 믿어요. 앞으로도 음악, 미술, 인문학 등 다양한 콘텐츠로 방문객들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넓혀갈 계획이고요. 특히 최근 서울과 수도권에서 찾아오는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면서, 대구 시내 특급호텔과 연계한 협업 패키지도 구상 중이에요. 다가오는 가을에는 작년에 개관한 야외 공연장 ‘심포니6’에서 대규모 공연을 열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최근 어떤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사유원을 찾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조경이나 건축 자체를 관람하러 오는 사람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회복과 치유를 목적으로 찾는 사람이 확실히 늘었어요. 특히 30대에서 50대 직장인, 기업 경영자, 창작자, 전문직 종사자처럼 정신적 소모가 큰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어요. 흥미로운 건 방문객들이 남기는 후기가 비슷하다는 거예요. “온전히 조용히 있고 싶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결국 다들 채우기보다는 비우러 오는 거네요. 사유원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에게 어떤 회복을 선물한다고 생각하나요?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정작 자신과 깊이 대화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죠. 사유원은 무언가를 더 채워주는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게 만드는 공간이에요. 복잡한 생각을 덜어내고 마음이 가벼워질 때 비로소 본연의 균형을 되찾게 되죠. 사유원은 바로 그 ‘비움과 회복의 시간’을 선물하는 곳이에요.


일상에서 휴식이 간절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그럴 때 자신만의 회복 방식이 있나요?

온종일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쉼 없이 의사결정을 내리다 보면,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럴 때면 일부러 휴대폰을 내려놓고 사유원 숲길을 천천히 걸어요. 어떤 목적이나 강박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엉킨 생각들이 가라앉고 마음이 평온해지거든요. 저에게는 자연 속을 가만히 걷는 시간이 가장 완벽한 치유이자 회복이에요.


아무런 제약 없이 온전히 나를 돌볼 수 있는 사흘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첫날은 그저 다리가 이끄는 대로 충분히 걷고, 바닥난 체력을 채우고 싶어요. 둘째 날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들고 자연 속에서 오랜 시간 머물고 싶고요. 마지막 날은 특별한 계획 없이 그저 흘러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어쩌면 최고의 휴식이란 무언가를 더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자유를 누리는 것 아닐까요. 최근에 저희가 구상 중인 키워드가 ‘선택적 고립’인데, 사유원 안에서 오롯이 나만의 세계에 머무는 고립 콘텐츠를 시도해봐도 참 흥미롭겠다 싶어요.


사유원에서 제대로 된 리트리트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조언이나 가이드가 있다면요?

사유원에 발을 들이는 하루만큼은 목적을 내려놓고 걸어보길 권해요. 멋진 사진을 남기려 서두르기보다 잠시 바위에 앉아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초록빛 나무를 지그시 바라보며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 봤으면 해요. 사유원은 잠깐 보고 빨리 떠나버리는 관광지가 아니라 천천히 머무를수록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무엇을 얻어가겠다’는 욕심 대신 ‘잠시 비워내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온다면 훨씬 밀도 높은 사유를 경험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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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오한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