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식이 낯설던 2009년, 박영미 대표는 자신의 별명 ‘김치공주’ 라는 이름으로 베를린에 한식당을 열었다.


15년째 한자리에서 정통 한식을 내며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감성을 현지에도 전파하고 있다.


박영미 김치공주 대표

🥢 김치공주가 자리 잡은 크로이츠베르크는 어떤 분위기의 동네인가요?


크로이츠베르크는 역동적인 데다 세계 각지의 식문화가 어우러져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식당을 열겠다고 마음먹고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한 지 4년 만에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틀 수 있었어요. 꽤나 힘든 과정이었죠. 크로이츠베르크에 20년 넘게 살고 있는데, 이웃 주민이나 가게 주인들과도 서로 안부를 묻고 챙겨주면서 친하게 지내고 있어요.


🥢 친구의 권유로 디자인 마켓에서 한식을 선보인 것이 김치공주의 시작이라고요.


2005년 크리스마스 때, 오래된 수영장 건물에서 디자인 마켓 행사를 기획하는 친구가 한국 음식을 팔아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어요. 당시 영화배우와 모델 일을 하면서 한식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거든요. 친구들과 ‘김치공주’라는 이름으로 스트리트 푸드 팝업 스토어를 열고 잡채와 김치전, 소불고기를 팔았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죠. 디자인 마켓이 진행되는 3일 내내 음식이 동나 밤마다 새로 만드느라 행복한 비명을 질렀으니까요.


🥢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디자인 마켓을 찾는 주 고객층이 여행과 새로운 문화를 즐기는 트렌디한 사람들이었는데, 한국 음식을 처음 접한다고 해서 놀랐어요. 많은 사람이 레스토랑이 어디냐고 물어보길래 아직은 없지만 개업하게 되면 꼭 연락하겠다고 하면서 이메일 주소를 적어뒀어요. 행사가 끝나고 나니 한식당을 꼭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죠. 4년의 준비 끝에 김치공주를 오픈하면서 메일 주소를 받아둔 사람을 모두 초대했어요. 약속을 지킨 거예요.



🥢 베를린 도심 한가운데 한국의 포장마차가 우뚝 서 있는 풍경이에요.


식당을 시작할 당시 예산이 적어 인테리어에 많이 투자할 수 없었어요. 비용을 적게 들이면서도 한국의 모던하고 도시적인 분위기를 내려고 한 의도가 잘 들어맞은 것 같아요. 인테리어를 칭찬하는 사람도 많고 패션 화보, 영화나 광고 촬영 장소로도 자주 이용되고 있어요. 특히 붉은색 조명이 특이해서 기억해주는 사람이 많아요.


🥢 2009년 김치공주를 오픈할 당시에는 한식이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을 것이라는 예감이 있었나요?


한식을 접하지 않아서 모를 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베를린 같은 대도시조차 한식당은 몇 군데 없었거든요. 김치공주가 많은 사람에게 한식을 알리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에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한식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어땠나요?


K-팝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기 전만 해도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어요. 당연히 한식은 생소한 음식이었죠.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으려면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해야 할 때가 많았어요. 초밥이나 나시고랭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의 음식을 찾는 사람도 있었고요. 지금은 식당을 찾는 많은 사람이 식사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도 궁금해해요.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물어보고요. 김치공주가 한식을 통해 한국을 더 친근하게 알리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박영미 대표는 한식 요리 책 «Kimchi Princess: Koreans Cook It Better»를 펴냈다.


🥢 가장 심혈을 기울인 메뉴는 무엇인가요?


갈비로스구이를 주문하면 직원이 테이블에서 열정과 재미를 곁들인 일명 구이 퍼포먼스를 보여줘요. 구운 고기를 상추에 올리고 쌈장을 곁들여 먹는 갈비로스구이에 대한 손님들의 반응이 매우 뜨거워요. 비빔밥, 소불고기, 김치찌개도 인기가 좋고요.


🥢 ‘비 오는 날 파전에 막걸리’ 감성을 현지인들이 이해하나요?


손님들에게 그런 한국적 감성을 설명해주면 재미있어해요. 김치공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술안주가 막걸리와 파전이기도 하고요. 레스토랑의 분위기가 삼겹살이나 치맥, 막걸리와 파전에 잘 어울려서 그런 듯도 싶어요.


🥢 보리차, 봉봉 포도 주스 같은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음료를 메뉴에 넣었다는 것도 인상적이네요.


한국의 청량음료와 주류 주문이 많아요. 소주 베이스의 칵테일도 있어요. 특히 이번 여름에는 저희가 직접 개발한 막걸리슬러시가 굉장히 인기였답니다.


🥢 많은 기업이 한식 현지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김치공주는 메뉴, 인테리어, 방석까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식당과 거의 같은 풍경이에요. 한국적인 모습 그대로를 지키려 한 부분과 현지화한 것은 무엇인가요?


일관되게 고수하는 콘셉트라고 한다면 모던하고 도시적인 분위기에서 정통 한식을 제공하는 것이에요. 소주나 막걸리 외에 한식과 잘 어울리는 이탈리아, 독일 와인도 엄선해서 제공하고 있고요. 녹차티라미수나 치아푸딩 같은 퓨전 디저트 메뉴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 김치공주를 운영하면서 메뉴 구성이나 응대 매뉴얼 등 변화를 준 부분이 있나요?


처음 식당을 열었을 때 서빙을 하는 직원 대부분이 현지인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한국 음식과 이름, 먹는 방법 등 많은 것을 가르쳐야 했죠. 대신 서빙 경험이 많아서 손님들을 적절한 유머와 위트로 편하게 해주는 등 다른 장점이 있었어요. 그러다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도입되면서 한국인 직원을 고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렇게 한국 현지의 느낌이 더해지면서 식당 분위기가 더 좋아졌습니다. 엄청난 행운이죠.


맛과 영양이 풍부한 것은 물론, 함께 둘러앉아 나눠 먹는 공동체 식문화가 한식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김치공주는 한식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독일에 전파하고 있어요.


🥢 특히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지난 15년 동안 조지 클루니, 클레어 데인스 등 많은 유명인이 다녀갔어요. 조지 클루니는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사람들로 꽉 찬 식당에서 다른 손님들처럼 평범하게 식사를 하고 갔어요.


🥢 김치공주에 이어 한식당 ‘마니모고’도 오픈했어요.


김치공주는 계획한 콘셉트가 있었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꽤 많은 공을 들였어요. 독일에서는 식당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이전하지 않아요. 마니모고는 건물주가 먼저 자기 건물에 레스토랑을 열어달라고 요청을 해왔어요. 마니모고가 자리한 베를린 아들러호프는 독일의 실리콘 밸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보니 김치공주와는 다른 콘셉트가 필요했어요. 점심 비즈니스 고객을 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불고기버거와 만두샐러드 같은 퓨전 요리도 준비했고요.


김치공주에 이어 문을 연 ‘마니모고(MANI MOGO)’.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많이 먹어’라는 뜻이다.
독일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아들러호프의 지역적 특성을 반영해 퓨전 한식도 선보인다.

🥢 한식 책 출간이라는 목표도 이루었어요. 또 다른 꿈은 무엇인가요?


요리책은 꿈을 이룬 것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레시피 외에 개인적인 일화도 넣어 재미를 더하려고 했는데 감사하게도 벌써 3쇄를 찍었습니다. 다음 도전으로 준비하고 있는 건 두 개의 요리 프로그램 녹화예요. 이달 말 오스트리아에서 촬영할 예정이에요.


🥢 본래 한식 DNA가 내면에 있었나요?


어릴 때 살던 도시에는 한국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없었어요. 한국에서 양념이나 도라지 같은 식재료를 공수해오기도 했지만, 부모님은 독일 재료로 한식을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으셨어요. 특히 생일에는 꼭 미역국을 끓여 주셨고요. 설날에는 동네 사람들과 모여 떡국을 나눠 먹은 기억도 있어요. 저에게 소울 푸드는 김치찌개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한국에 가 가능한 한 많은 레스토랑을 방문해 최신 트렌드를 보려고 노력해요.


🥢 한식의 힘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음식 고유의 맛도 한몫하지만, 함께 둘러앉아 나눠 먹는 공동체 식문화가 한식의 큰 힘이라고 생각해요. 한식에는 다양한 채소 반찬이 올라가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식단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죠. 한국에는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있고, 식구도 함께 살면서 밥을 같이 먹는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개인주의 문화가 음식 서빙에서도 드러나요. 각자 자기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지 한국처럼 여러 가지를 시켜서 나눠 먹지 않아요. 김치공주는 한식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독일에 알리고 있는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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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김희성

사진 제공 펠릭스 박(인물), 김치공주(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