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머무는 사람의 생각, 취향, 태도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관습적인 가치관을 탈피한 삶, 생각이 담긴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5년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다양한 관점으로 집의 가치, 가능성을 살피는 전시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이 진행된다. 전시를 기획한 정다영 큐레이터는 주어진 공간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 집을 선택하고 지은 사람들과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냈다. 전시 시작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퇴사 후 건축적 형식을 탐구하는 기획 집단 CAC(Curating Architecture Collective)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 정다영 큐레이터를 CAC 리딩룸에서 만났다. 그는 2025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선정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Q. 다양한 건축 중에서도 ‘집’을 주제로 건축가, 건축주들의 이야기를 전시에 풀어낸 계기가 궁금했어요.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살아갑니다. 집은 돌봄, 편의, 재산 등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 가치를 품고 있어요. 그럼에도 그 범주 밖에서 자신의 집을 ‘선택’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보고 싶었어요. 건축적으로는 이러한 집들을 짓는 조건이나 환경 자체가 저항적이라고 느꼈거든요. 기존 주택도 재건축되면서 아파트로 바뀌는 현실 속에서 작은 집을 짓고 유지하는 것 자체가 도시의 다양한 생태계를 지키는 일이라 봤고요. 그렇기에 전시에서는 100평 이상의 고급 주택은 다루지 않았죠.
Q. 여느 건축 전시와는 결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매우 동시대적으로 집의 가능성을 탐구했더라고요.
퇴사 전까지 미술관에서 14년 정도 근무했어요. 제가 진행했던 초반 전시는 익숙할 법한 아카이브에 기반한 전시였어요. 건축사의 공백을 메꾼다거나 한 인물을 조명하는 회고전과 같은 형식이었어요. 물론 이런 전시도 매우 중요하지만 대중과도 소통할 수 있는 전시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선 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어요. 또 부끄럽긴 한데, 건축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연결하는 집: 대안적 삶을 위한 건축>은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꾸린 두 번째 전시예요.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돌봄, 사랑, 막막함 같은 것들이 저를 인간적으로 성숙시켰어요. 이러한 변화가 전시에도 녹아든 듯해요. 건축과 감정은 굉장히 거리가 먼 단어잖아요. 자칫 아마추어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보다 보편적 사랑이 묻어나는 전시면 좋겠다 싶었죠.
Q. 동시대 건축을 다루는 데에도 어려움이 컸으리라 봐요.
과거 역사를 다루는 전시를 준비할 때면 옛 문헌이나 자료를 해석하는 입장을 취하게 되죠. 반대로 동시대 전시는 취재하는 사람에 가까워지는 듯해요. 자료나 작품을 편집하는 기술, 방법론에 대해서도 연구하게 되고요. 과거에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기에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집들을 돌던 중 취재 감각이 되살아나기도 했죠. 건축가와 각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을 직접 만났거든요. 다만 아쉬운 점은 전시에서 시대적 스펙트럼을 한정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전시에 올린 집들은 2000년대 이후에 지어졌는데, 본래 기획은 1970~1980년대 집까지 포함했거든요. 취재를 하다 보니 한국에서 주택이 30년 이상 유지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되돌아보니 시의적절했다고도 느껴요. 2000년대 이후라면 30년에 가까운 시간인데, 한 챕터의 건축을 정리하기 알맞은 시간이죠. 역사적 사실을 발효하고 비평적 거리를 견지하는 전시도 중요하지만 동시대를 기록하는 일도 필요하니까요.
Q. 지난 20년간 건축 잡지 에디터, 전문 큐레이터로 활동했어요. 긴 시간 동안 다양한 집을 살펴봤을 텐데, 이번 전시가 ‘집’에 대한 생각을 재정립하게 했을까요?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고, 실천에 옮기게 되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의외로 사회가 바뀌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출산, 독립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청년들 같은 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건, 어찌 보면 아파트라는 주거 공간의 한계일 수도 있다고 느껴요. 아파트는 편의성이 뛰어나지만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 삶을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천편일률적인 형태를 띠고 있죠. 예술이나 문화 생태계를 지탱하는 건 다양성이잖아요. 미디어나 갤러리가 그러한 다양성을 계속해 조명해줘야 하고, 저 역시 주류의 선택은 아닐지라도 큐레이터로서 ‘이러한 삶도 있다’고 알려주는 역할을 해야 하죠.
동시대적으로 일어나는 사회·건축적 변화를 전시로 풀어내고 싶은 갈망이 있었어요. 집이야말로 일상 전반을 아우르는 공간이잖아요.
Q.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파트라는 거대한 박스가 갖는 힘, 편의성이 매우 크다고 봐요. 비슷비슷해보이는 아파트지만 각자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인테리어를 하는 문화가 확산되기도 했고요.
그를 통해 한국의 주거 문화 수준이 매우 높아졌음을 느껴요. 골격은 천편일률적일 수 있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소박한 공간을 가꾸는 거죠. 이번 전시는 그 다음 단계의 시선, 질문에 관한 것이기도 해요. 집의 내부를 넘어 그 바깥을 보는 거죠. 집이 외부와 맺는 관계에 대해서 다루는 것 또한 전시 목표였어요. 간혹 건물 외관 사진이 많다고 이야기하는 관람객이 있는데, 의도된 선택이에요.
Q. 집이 지닌 지향점, 포지션 등을 일러주고 싶었던 거군요.
네. 집 내부의 아름다움, 그다음 단계를 논의할 때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어요. ‘집이 마을, 도시,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라는 물음은 굉장히 추상적이지만, 전시에 소개된 집들의 거주자들은 이에 대한 답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Q. 전시에 소개된 집들은 어떠한 형태로 주변과 관계를 맺고 있던가요? 기억에 남는 집을 소개해주세요.
먼저 서울 은평구의 베이스캠프 마운틴은 김광수 건축가가 2004년에 2.5평의 비닐하우스 2개와 12평 컨테이너 박스를 결합해 지은 카페 겸 집이에요.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건축주는 1년에 1~3개월만 집에 머무는 터라 5분 안에 짐을 싸서 나갈 수 있는 베이스캠프 같은 집을 원했죠. 당초 5~7년을 건물 수명으로 보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건재해요. 베이스캠프 마운틴은 건축 당시만 해도 굉장히 가벼운 집으로 평가되었는데, 주위 모든 주택이 허물어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음에도 당당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삶의 태도가 담긴 집이라 가능했던 일이라 봐요. 또 B.U.S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가 도봉구에 지은 ‘쓸모의 발견’도 기억에 남아요. 오래된 집이 늘어선 주택가 초입의 집을 증축해 만든 곳인데 주거 공간과 1.5평의 작은 서점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건축주가 “이 집이 마을의 일부분을 성장시켰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슨 말인가 하니 나이 든 어르신들이 모여 사는 동네라 사랑방 같은 공간이 필요했는데, 그 역할을 ‘쓸모의 발견’이 해내고 있다는거죠. 하나의 집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어요.
Q. 집이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꿀 수 있기에 건축가 역시 보수적인 관점으로 접근하기 쉽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럼요. 거꾸로 이야기하자면 전시된 집들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공간의 형식과 원하는 형식이 맞아떨어진 곳들이라는 거예요. 인터뷰로 만난 건축주들이 건축가의 설계와 힘을 견줄 수 있을 만큼 원하는 삶을 향한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전시에는 집의 외형을 넘어서 살아가며 느끼는 만족감을 파악하기 위해 실제로 1년 이상 거주한 집들만 추렸는데, 자신이 원하는 삶을 건축한 집에서 일구는 사람을 만났을 때 느껴지는 희열이 엄청났어요.
Q.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다양성을 품은 ‘집’은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존재라고 느꼈나요?
도시 속 사회 저항의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집을 지으며 사회에 기여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집 하나하나가 도시 생태계의 다양성을 지키는 보루 같은 존재거든요. 유럽 여행에서 만나는 도시 고유의 아름다움은 집에서 찾아볼 수 있죠. 건축계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 ‘집이 땅의 형상을 품고 있다’고 하는데, 자연과 도시의 다양성을 유지해주는 말뚝 같은 존재들이죠. 기대감도 있어요. 부모님 세대만 하더라도 태어난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죠. 젊은 세대는 집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하나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듯해요. 잠시 향유하는 공간이기에 무인양품의 무지 하우스, 캡슐 하우스 같은 개념도 가능하겠죠. 자동차 회사가 차내에 하우징 개념을 도입하려는 이유도 그렇고요. 이러한 생각들이 도화선처럼 자리해 세상이, 또 집이 바뀌어갈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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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유승현
Photographer 박나희